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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피스칼럼] 한반도 평화는 어떻게 만들까

  • 작성자: 총괄관리자
  • 작성일: 2026.09.28. 11:02
  • 조회수: 36

[K-피스칼럼] 한반도 평화는 어떻게 만들까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까?

서재정 (듀크대 방문학자)

 

오래 전, 아는 사람은 알던 농담이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농담이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를 아십니까?"
어이가 없어서 답을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3단계 해법이 쏟아진다.
"1단계, 냉장고 문을 연다."
"2단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3단계, 냉장고 문을 닫는다."
"끝!"


농담이지만 뼈아픈 가르침이 있다. 어려운 과제를 절차적 문제로 바꿔버리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3단계’만 밟으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님을. 정말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자원을 들여서 거대한 냉장고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아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필요가 없는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손발이 닳도록 노력하지 않고 단계론만 외쳐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단계만 무수히 나누다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이 논파했듯이 아킬레우스조차도 앞에 있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촛불혁명’으로 윤석열 정부의 계엄시도를 저지하고 전쟁위기를 막아낸 한국에 주어진 엄중한 질문이다. 돌이켜 보면 한반도는 윤석열 정부 시기 아슬아슬한 전쟁 위기를 겪었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북측과 「9·19 군사합의」를 맺어 남북간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었지만, 윤 정부는 2024년 6월 이를 전면 효력 정지시켰다.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하고 북과 인접한 해상에서 해병대 사격훈련을 시행하는 등 적대적 행위들을 재개했다. 특히 10~11월에는 북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쌓기 위해 전쟁을 불사했던 위험한 정부를 평화적으로 쫓아낸 이후 한반도 평화 구축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부각됐다.

이러한 과제를 인식한 ‘촛불정부 2.0’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추진한다고 천명했다. ①남북 평화공존의 제도화 ②한반도 공동성장 기반 구축 ③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3대 목표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 추진 전략은 2025년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공개한 ‘END 이니셔티브’다. 즉 ‘교류 (Exchange)-관계 정상화 (Normalization)-비핵화 (Denuclearization)’라는 포괄적 접근을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비핵화는 사활적 과제이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우므로 실용적 해법을 제시했다.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축소-폐기라는 3단계로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즉시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는 것과 같은 조처를 했다. 이어서 이재명 대통령은 1년 전 8·15 경축사에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그리고 단계적으로 복원"하는 등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사연습을 중단하거나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대책,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대책들이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다. 이전 정부와 달리 한반도 평화에 진전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부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END 이니셔티브는 그 첫 단계인 교류의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정부는커녕 민간 차원의 교류, 심지어 만남조차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난 5월 조선 평양의 내고향녀자축구단이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시합을 위해 입국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팀의 입국은 교류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과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한국 법무부는 조선 여권을 들고 입국하는 선수들에게 사증을 발급하는 대신 방문증명서를 주는 편법을 썼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편법으로 남북교류가 얼마나 가능할까? 대한민국 국민이 조선 당국의 비자를 받지 않고 통일부가 발급한 방문증명서만 들고 조선을 방문할 수 있을까?

1년 전 이재명 대통령은 평화공존의 3원칙을 제시하며 북의 체제를 존중한다는 것을 첫 번째로 내세웠다. 또 올 8·15에는 이 원칙에 기반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첫 번째로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 공존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조선을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상대방을 그의 이름으로 불러주지도 못한다면 그를 존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공식 국가명칭조차 부르지 못하면서 조선에 비자를 신청한다는 것은 가당키나 한가. 그러니 교류는 첫 발조차 띠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이 공허한 단계론 같아 보이는 이유다. 물론 정부는 END 이니셔티브가 단계론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교류의 첫발도 떼지 못하면서 훨씬 더 어려운 과제인 관계 정상화와 비핵화를 어찌 성취할 것인가.

해서 이재명 대통령은 올 8·15 경축사에서 또 다른 단계론을 제시했다. 평화공존의 3원칙을 이행할 3단계 청사진이다.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 공존, 둘째,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 공존, 셋째,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평화 공존이다. 하지만 이도 단계론의 공허함을 되풀이하고 있다. 첫 단계 포용적 평화 공존을 위해 대결을 멈추고 적대성을 줄여가야 한다고 선언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은 따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조선을 적으로 상정하는 군사훈련은 계속하고, 내년도 국방예산은 역대 최대폭으로 인상한 73조원을 편성했다. 특히 방위력 개선 부문은 역대 최대폭으로 늘리며 이를 자주국방 역량 확충이라고 미화하고 있지만, 결국 조선과 싸울 준비를 맹렬하게 벌이는 불안한 공존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니 어떻게 2단계나 3단계로 나갈 수 있겠는가. 3단계 청사진은 단계론으로서는 훌륭하지만, 내용을 채울 실천이 없거나 오히려 그 내용은 청사진과 반대로 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전쟁을 끝낼 당사자 논의를 시작하자는 대통령의 제안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다소 뜬금없이 보였다.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면서도 미국을 평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 앞서 달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전쟁의 당사자들인 조선과 중국, 러시아를 평화체제 논의 테이블로 유도하려는 외교적 설득도, 실천적 조치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전쟁을 끝내기 위한 여정을 통해 북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실효적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허망한 ‘코끼리 단계론’일 뿐이다. "첫째 종전협상을 시작한다, 둘째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셋째 북의 핵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킨다. 끝."

다행히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구원했다. 8월 17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날 시작됐던 UFS 군사연습은 조기 종료됐고, 이 조치가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둔 논의가 무성하게 솟아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언급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 카드가 아니냐는 것이다. 또,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진 경험도 이러한 낙관론에 한몫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는 정치 자산이다. 미국 외교안보의 주류 밖에 있었던 그는 오히려 한국전쟁과 한미동맹을 객관적으로 볼 위치에 있다. 그의 주위에 있는 전략가들도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조선과 관계를 개선하여 얻을 지정학적 이해득실을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계산하고 있다. UFS 군사연습 축소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지각변동을 가져올 문은 조금이나마 열려있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도 페이스메이커로 동조하고 있으니 그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단,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지금까지 행보는 절차적으로만 보아도 아쉬운 점이 많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첫 단계로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먼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면 어땠을까? 페이스메이커로서 한국이 미국을 한발 앞서서 이끌었다면, 그 발걸음을 조선과의 회담으로 이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지 않았을까?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북미정상회담을 트럼프의 치적으로 만들어주면 이는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높여주지 않았을까? 그의 관심을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서 북미정상회담으로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전시작전권 전환은 물론 대미 투자 협상에서도 페이스메이커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물론 조선과의 관계에서도 유리한 발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해서, 한반도 평화 공존의 첫 단계는 한국이 평화적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공약대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조선을 존중하는 실질적 조치들을 이행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대결을 멈추고 군비확충부터 중단하는 것이다. "핵 없는 한반도"를 3대 목표의 하나로 천명하는 이상주의적 행동을 피하고,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채 비핵화로 가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창하고 화려한 원칙들과 단계들을 내세우기보다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평화 정책들을 하나씩 이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용주의적으로 평화를 실천하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공존도 현실로 다가 올 것이다.

이미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바야흐로 세상은 쟁기를 녹여 총칼을 만들 뿐만 아니라 반도체를 이용해 자폭 드론과 킬러로봇을 만드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은 이 군비경쟁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전환시키는 ‘동방의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2026년 9월 10일)

 


 

한반도 평화행동이 발행하는 월례 칼럼[K-피스 칼럼]입니다.
매달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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